성북동 길상사를 처음 알게 된 건 누군가의 산책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싶어서 찾아보다가 빠져들었다. 도심 속 사찰이라는 것만으로도 끌리는데, 여기엔 이상한 이야기가 하나 붙어 있다.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고급 요정을 통째로 절에 바친 여자. 그 여자가 평생 잊지 못한 시인. 그리고 “그까짓 1000억은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하다”는 말 한마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 아닌가.

요정 대원각이 사찰이 되기까지, 10년간의 밀고 당기기
김영한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서울 3대 요정으로 불리던 대원각의 주인이다. 1987년,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를 읽고 크게 감명받은 그는 스님을 찾아가 “절을 지어달라”고 청했다.
건물 40여 채, 대지 7000평. 스님은 거절했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이니까.
근 10년을 찾아갔다. 결국 법정 스님이 받아들였고, 1997년 12월 길상사가 문을 열었다. 창건 법회에서 김영한은 수천 명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기 보이는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던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술잔과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자리가, 풍경 소리와 나무 냄새로 채워진 거다.
백석의 시 한 줄이 1000억보다 크다던 그 사랑, 진짜일까
김영한이 대원각을 시주하면서 남긴 말이 유명하다. “1000억은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 시인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쓴 그 백석이다. 김영한은 자신이 백석의 연인 자야였다고 평생 주장했다.
근데 여기서 좀 재밌는 게 있다. 국문학계에서는 이 이야기를 100% 믿지 않는다. 백석이 김영한에 대해 직접 남긴 기록은 단 하나도 없다. 편지도, 시 헌정도 없다. 백석 연구자 송준은 “생전 김영한을 인터뷰했는데, 백석의 시에 대해 거의 모르더라”고 증언했다.
사랑이 진짜였든 아니었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마음이 1000억짜리 요정을 절로 바꿨다는 사실. 그게 사랑의 힘이든 회한의 힘이든, 결과적으로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고요한 공간이 생겼다.
침묵의 집에서 10분만 앉아보면 알게 되는 것
길상사 경내를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침묵의 집이라는 공간이 나온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명상 공간이다. 별도 예약도 필요 없다.
소셜미디어에서 “처음 가본 길상사, 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리다가 침묵의 집에서 명상도 좀 하고 왔다”는 후기가 꽤 많다. 방석 위에 10분만 앉아 있으면 바깥 소음이 사라지는 느낌. 처음엔 어색한데 나갈 때쯤 되면 좀 아쉽다고들 한다.
무료 입장에, 주차도 무료. 하절기 기준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열려 있다. 단, 짧은 치마나 반바지는 입구에서 제한되니까 가기 전에 복장만 한 번 체크하면 된다.
다라니다원에서 차 한 잔, 그리고 성북동 산책 동선
길상사 안에는 다라니다원이라는 북카페가 있다. 신발 벗고 들어가는 형태인데, 오미자차나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법정 스님 관련 책을 읽을 수 있다. 월요일 휴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길상사만 보고 돌아가기엔 성북동이 아깝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최순우 옛집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이태준 가옥을 개조한 수연산방이라는 한옥 찻집이 있다. 팥빙수가 유명하다. 거기서 또 조금 올라가면 만해 한용운 심우장까지 닿는다.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02번 마을버스 타면 길상사 정류장에서 내릴 수 있고, 산책 동선으로는 최순우 옛집에서 시작해 길상사 들르고 심우장까지 올라가는 게 체력 배분에 좋다.
템플스테이 8만 원, 하룻밤 무소유라는 이름의 프로그램
길상사 템플스테이가 있다. 이름이 하룻밤 무소유. 1박 2일에 8만 원이고, 선착순 40명 제한이다. 참깨명상이라는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는데, 간단한 체조와 명상을 함께 한다.
도심 속 사찰에서 하룻밤 자는 경험 자체가 좀 특별하긴 하다. 빌딩 사이에서 새소리 듣고 일어나는 아침이라니. 예약은 템플스테이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 관련글: 북한산 국녕사 봉연 스님이 혼자 지키는 300년 산사 이야기 – 서울 근교 사찰 분위기가 궁금하다면 참고할 만한 글
마무리 한마디
술집이 절이 되고, 기생의 사랑 이야기가 시비에 새겨지고, 요정의 팔각정에서 범종 소리가 울린다. 이 모든 게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번쯤 걸어볼 만하지 않나.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건, 길상사가 다음에 또 어떤 이야기를 품게 될까 하는 것.
Q&A
Q1. 길상사 입장료가 있나?
A1. 없다. 무료 입장이고 주차도 무료다.
Q2. 길상사 운영 시간은?
A2. 하절기(4~9월) 오전 6시 30분~오후 8시, 동절기(10~3월) 오전 6시 30분~오후 7시.
Q3. 반바지나 짧은 치마 입고 가도 되나?
A3. 안 된다. 사찰이라 노출 있는 복장은 입구에서 제한된다.
Q4. 다라니다원 이용 시간은?
A4. 오전 10시~오후 5시, 월요일 휴무.
Q5. 길상사까지 대중교통으로 어떻게 가나?
A5.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성북02번 마을버스 타고 길상사 정류장 하차.